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1964년 미국 대통령 선거 (문단 편집) == 본선 == || {{{#!wiki style="margin: -5px -10px" [youtube(9Id_r6pNsus)]}}} || || '''선거의 판도를 결정지은 '데이지 걸' 광고''' || 양 당 후보가 확정되면서 사실상 승부가 결정지어진 것으로 여겨졌다. 양당 후보가 확정된 8월 갤럽 여론조사에서 린든 B. 존슨이 65%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은데 반해 배리 골드워터가 29% 지지를 받는 수준에 그쳤기 때문. 골드워터가 안그래도 [[1964년 미국 연방 민권법]] 반대 투표 등으로 유색인종 및 공화당 온건 지지층의 불만을 사고 있던 상황에서 자신에게 도움을 줄 수 있었던 공화당 출신 전직 대통령인 [[드와이트 D. 아이젠하워]]에게도 날을 세우면서 스스로 외연 확장의 발판을 날렸다. 골드워터 입장에서는 아이젠하워 역시 [[리버럴]] 성향에 더 가까운 대통령이었기 때문에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. 거기에 린든 B. 존슨은 선거사에 큰 영향을 준 TV 광고로 남은 [[데이지 걸]]을 [[1964년]] [[9월 7일]] 내보내면서 쐐기를 박았다. [[베트남 전쟁]]에서 [[핵무기]]를 사용해야한다는 등 과격한 어조를 이어가고 있던 골드워터를 말그대로 '[[전쟁광]]'으로 못박아 버린 것. [[쿠바 미사일 위기]]가 불과 2년전이었고 [[통킹만 사건]] 이후 [[베트남 전쟁]]을 치르고 있던 미국 국민 입장에서는 이 광고를 그저 네거티브로 웃어넘길 수 없었다. 그덕분에 존슨은 골드워터와의 지지율 격차를 더 벌렸다. 위기에 처한 골드워터를 구하기 위해 한때 민주당 지지자 출신이었던 배우 [[로널드 레이건]]이 지원 유세를 하면서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. 한때 골드워터 진영이 받은 후원금이 백만 달러에 육박하기도 했지만 선거 구도에 영향을 미칠 정도는 아니었다. 한편, 양 후보의 선거 유세가 [[10월 20일]], [[허버트 후버]] 전 대통령의 서거로 잠시 중단되었는데 두 후보 모두 후버의 장례식에 참석하여 모처럼만에 화합하는 모습을 선보이기도 했다. 결국, LBJ가 큰 우세를 잡은 채로 선거 당일에 돌입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